■ 어법주닛켄상인예하 어지남

능소일체(能所一體)의 수행(修行)

 

  말씀드릴 필요도 없이 본종(本宗)의 신심(信心)은 승속일도(僧俗一途)라는 것을 예부터 말하고 있으며, 또 현재도 그 의의에서 광선유포(廣宣流布)를 향한 수행(修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잘 타종(他宗)의 유명한 절에 가보면 그 절의 깊숙한 곳에서 법요(法要)를 하고 있으며, 10명·20명의 승려가 무엇인가 낮은 목소리로 독경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깥쪽에 신자(信者)가 따분하다는 듯한 얼굴인지 고마워하다는 듯한 얼굴인지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그 2~30명 혹은 4~50명의 승려 뒤에 붙어서 잠자코 앉아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타종의 일반적인 법요인 것 같습니다.  즉 이것은 타종에서는 승려만이 무언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어려운 경(經)을 올리거나 수행을 행하는 것이며, 신자는 그저 공양(供養) 등을 내고 그 대가로 공덕을 자기가 받는다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종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역시 한 사람 한 사람이 공덕을 쌓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심을 하고 독경(讀經) 창제(唱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승속일치(僧俗一致)의 행업(行業)의 근본은 실은 "능소일체(能所一體)"라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능(能)"이란 능화(能化)란 말로 이것은 본래의 의미에서 말하면 부처님이라는 말입니다.  또 "소(所)"란 소화(所化)라는 것으로 부처님 이외의 부처님에 의해 인도(引導)되는 일체중생(一體衆生)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능소(能所)가 일체(一體)라고 하는 의의를 [관심의 본존초(觀心本尊抄)]에 있어서 사제불이(師弟不二), 군신일체(君臣一體)라는 도리(道理) 위에서 제시하시고 있다는 것을 니치칸상인(日寬上人)께서도 해석하시고 있습니다.
  즉 석존(釋尊)은 일대(一代) 50년간의 가르침을 여러 가지로 설 하셨습니다만, 그 귀결(歸決)하는 곳, 궁극(窮極)은 법화경(法華經)의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의 화도(化導)였던 것이며, 이에 대해서 대성인(大聖人)께서는
「지금 본시(本時)의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삼재(三災)를 벗어나고 사겁(四劫)을 떠난 상주(常住)의 정토(淨土)이니라.  부처 이미 과거(過去)에도 멸(滅)하지 않고, 미래(未來)에도 생(生)하지 않으며 소화(所化) 역시 동체(同體)이니라.」[관심의 본존초(觀心本尊抄)]
라고 하는 유명한 어문을 나타내시고 재세의 중생이 석존에 의해 여러 가지로 화도(化導)를 받아 좌로 우로, 혹은 얕고, 혹은 깊게 여러 가지의 가르침이 설 해졌는데, 마지막에는 부처님의 본불님으로써의 경계(境界)와 중생 일체의 경계가 묘법(妙法)을 중심으로 하여 일체로 되었다고. 이른 바 「소화(所化) 역시 동체(同體)이니라.」라고 하는 곳에 즉신성불(卽身成佛)의 모습이 있었다고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석존 재세의 중생이 인도되는 모습이며 그 때는 [수량품(壽量品)]의 설법에 의해 재세(在世)의 사람들의 기근(機根)이 그러한 화도의 형태에서 부처님과 일체의 경지로써 즉신성불의 본회(本懷)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법(末法)은 어떠한가 하면, 이것은 구원원초(久遠元初)의 직달본인묘(直達本因妙)의 수행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설법에 의해 부처님과 일체로 되는 것은 도저히 안됩니다.  역시 부처님의 생명을 나타내신 대어본존(大御本尊)님을 무이(無二)로 믿고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하여 가는 수행의 모습에 의해 이른 바 부처님의 생명이 그대로 우리 몸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말법의 본불님·대성인의 경계, 수행도 우리들의 수행도 완전히 똑같은 것입니다.
  대성인께서는 [기죠보어서(義淨房御書)]에서
「수량품(壽量品)의 자아게(自我偈)에 가로되 『일심(一心)으로 부처를 뵙기를 원하여, 스스로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노라.』운운.  니치렌(日蓮)의 기심(己心)의 불과(佛果)를 문(文)에 의하여 나타내느니라.」(어서 669)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만, 이 "일심욕견불(一心欲見佛)"도 "부자석신명(不自惜身命)"도 다같이 신심수행이라는 것입니다.  즉 본존(本尊)님을 믿는 것이 일심욕견불이고, 제목을 불러 가는 것이 부자석신명으로, 대성인께서는 그 수행에 의해 구원원초의 불도를 이루시고 본존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들도 또 대성인님을 무이(無二)로 신봉(信奉)하고 제목을 부르는 곳에 영원에 걸쳐서의 대복운(大福運)의 기초가 되는 성불(成佛)의 종자(種子)를 각지(覺知)하여 즉신성불의 본회(本懷)를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오늘 이 법성(法城)이 완성된 것을 계기(契機)로 한층 신행배증(信行倍增)하시고 이 지방의 광선유포를 위해 정진하실 것을 바라면서 한 말씀 축사로 갈음하는 바입니다.

(다이니치렌(大日蓮) 1982년 6월호, 혼묘지(本妙寺) 본당·고리 신축낙경입불법요의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