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법주닛켄상인예하 어지남

구계즉불계(九界卽佛界)의 창제(唱題)

 

  예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 까기 여러 가지 신통력(神通力)을 가지고 있는 중생(衆生)과 보살(菩薩) 등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불계(佛界)에 이르지 못한 가운데에서의 통력(通力) 등에서는 결국 중생을 진정으로 인도할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요컨대 구계(九界)에 불계가 갖추어지고 불계에 구계가 갖추어진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는 것은 법화경(法華經) 이외에는 없습니다.
  최근에도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모습이 여러 곳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몇 십 명의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서 최면(催眠)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게 하는, 실로 불가사의한, 많은 사람들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모습이 여러 가지 통력의 형태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소위 신통력이라고 합니까, 그러한 것의 하나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만 이것도 불법의 전체의 법의(法義)에서 본다면 육도(六道) 속의 조그만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육도는 모두가 아(我)를 중심으로 하는 미혹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그 속에서도 실로 불가사의한 이근(利根)과 통력이라는 것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이 보고 여러 가지로 경탄하고 있습니다만, 결국 그들의 통력에 의해 남을 성불(成佛)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가르침 상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릇되어 있는 모습이 존재하는 것이며, 대성인님께서는 그 점을
「법문(法門)으로써 사정(邪正)을 밝혀야 하느니라.  이근(利根)과 통력(通力)에는 의하지 말지어다.」(어서 23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부처가 된다는 것에서는, 법화경 이외에 그 가르침을 명시하고 있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처에 대해서 '부처님은 대단히 존귀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도저히 우리들이 견줄 바가 아니고, 우리들 미혹의 범부(凡夫)와는 동떨어진 존재다.'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고 생각됩니다.  본종(本宗)의 제목(題目)을 부르고 있는 사람 중에도 '우리들은 도저히 부처님께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처님 같은 일은 할 수 없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법화경의 가르침은 구계즉불계(九界卽佛界) 불계즉구계(佛界卽九界)의 존귀한 길을 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생명 속에는 지옥(地獄)도 있는가 하면 불계도 잇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나타나게 하는가라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요컨대 본문삼대비법(本門三大秘法)이며, 본문(本門)의 본존(本尊)을 믿고 견실하게 제목(題目)을 부른다는 행(行) 속에 미혹의 중생인 우리들이 즉 부처의 생명으로서 모든 면에서 공덕(功德)을 확실하게 성취하여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언제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만, 南無妙法蓮華經라고 항상 불러 나가는 창제행(唱題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간단하게 끝내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이것은 커다란 잘못입니다.  자신이 납득이 갈 때까지 30분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매일의 생활 속에서 시간을 선택하여 본존님에게 南無妙法蓮華經의 창제를 착실하게 행해 가는 곳에 우리들의 생명이 저절로 구계즉불계가 되고, 또 불계가 그대로 구계로서, 우리들의 생명이 그대로 부처의 행업(行業)을 나타내가는 것입니다.  대성인님께서도 어서(御書) 속에서 제목을 견실하게 불러가는 사람은 그대로 부처라는 것을 항상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 오늘 나는 정말로 행복한 경계(境界)를 얻었다.' 라고 자각하고 또 고난을 헤쳐 나가서야 진정한 성불(成佛)의 길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확실할 때에 비로소 힘찬 마음을 가지고 중생을 이끄는, 즉 절복(折伏)을 행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 1월 1일 원단근행을 맞이하여 총본산(總本山) 객전(客殿)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