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법주닛켄상인예하 어지남

본말구경(本末究竟)의 신심(信心)

 

  세간의 많은 사람은 묘법(妙法)의 깊은 의의를 모르며 또한 신심이 없습니다.  요컨대 그것은 자기 자신의 본래의 본연의 모습, 깊은 생명의 진실한 모습을 잊고 있으며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妙法蓮華經 속에서야 말로 일체의 십계(十界)를 갖춘 깊은 의의가, 또한 법의 모습이 그대로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곳에 우리들의 생명이 본래의 진실한 본연의 모습으로서의 당체(當體)를 자기 자신이 알던 모르던 상관없이 그 자체로 거기에 분명하게 귀착(歸着)하여 나타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고 있는 사람들은 그 근원을 모르기 때문에, 즉 부모를 떠난 부랑아(浮浪兒)가 휘청거리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근원을 잊고 있다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대성인님의 삼대비법(三大秘法)의 대어본존(大御本尊)을 신봉(信奉)하고 묘법을 부르는 까닭에 이 묘법의 당체를 깊이 공부하고 수행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이 그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존귀한 생명의 당체가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또 잊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법화경(法華經) 신해품(信解品)에서는 아버지의 곁을 떠나서 오랫동안 방랑하고 있던 궁자(窮子)의 모습으로서 그 비유 속에 나타내시고 있는 바입니다.  그것이 소위 본원(本源)의 곳으로 돌아와 장자(長者)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자각하고, 그 모든 것을 이어받는 것으로 그 궁자가 본래 생명의 당체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법계(法界)의 모든 중생에 대해서 이 의의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외고 계시는 방편품(方便品)의 마지막 부분에 십여시(十如是)가 있고 그 마지막에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법화경 90)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이 본말구경이라는 것은 십계(十界)에 걸쳐져 있습니다.  즉 지옥(地獄)은 지옥의 중생 속에서 본말구경하고, 불계(佛界)는 불계 속에서 본말구경하고 있는 것인데, 근본을 잊은 우리들의 생활, 생명이 묘법을 부름으로써 그 자체로 부처의 생명으로서의 본체(本體), 본질(本質)을 자각하고, 그에 의해 본말(本末)의 말(末) 쪽의 모든 작용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본말이라는 것은 하나는 체(體)와 용(用)이라고 하는 의모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체(體)라는 의미에서는 우리들의 생명이 그대로 존귀한 묘법의 당체이며, 일념즉십계호구(一念卽十界互具) 백계천여(百界千如) 삼천(三千)을 포함한 깊은 의의를 가지고 있는 부처의 모습입니다.  단 묘법을 잊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온갖 방편의 가르침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은 그 부분의 자각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한 가르침인 법화경을 믿고 제목을 부르는 곳에 그 본체가 분명하게 자기 자신에게 부처의 당체로서 저절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 본말구경의 본(本)입니다.
  그에 따라서 이번에는 그 사람의 과거로부터의 여러 가지의 죄업(罪業), 개중에는 가난한 사람도 있고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도 있으며 그밖에 여러 가지의 고뇌가 있습니다만, 그것이 묘법의 본체를 확고히 자각하면서 제목을 부르는 그 역용(力用)에 있어서 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즉 공덕(功德)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본말구경의 말(末)입니다.  이 모습은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에서
「여도득선(如渡得船) (중략) 여빈득보(如貧得寶) <※나루에서 배를 얻음과 같으며, (중략) 가난함에 보배를 얻음과 같으며>」(법화경 535)
라고 여러 가지의 의미로 공덕이 많이 설 해져 있습니다.  일체의 사람들의 고뇌와 또 그에 따라 나오게 되는 소원, 욕망하는 마음은 무량합니다만, 요컨대 자기 자신의 과거의 방법(謗法)의 악업에 의해 오늘의 고뇌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 거기에 본말구경이 항상 미혹과 번민 속에서 되풀이되는 일 없이 더욱 묘법을 확고하게 믿는 곳에 그대로 부처의 체(體)가 나타나 그 체 위에 용(用)으로써 본말의 말 쪽의 온갖 의미에서 제원성취(諸願成就), 죄장소멸(罪障消滅)된 진정으로 행복한 모습이 그 사람의 생활, 마음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점을 똑바로 확신하면서 수행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2004년 3월 7일 광포창제행 후, 총본산(總本山) 객전(客殿)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