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법주닛켄상인예하 어지남

본문(本門)의 제목(題目)

 

  대성인님께서는 「南無妙法蓮華經를 불러라.」는 것을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신 것은 석존이며, 법화경 안에 그 수행으로서 수지(受持)독(讀)송(誦)해설(解說)서사(書寫)라는 오종(五種)의 수행이 설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석존께서는 「南無妙法蓮華經를 불러라.」는 것을 법화경 일부(一部) 팔권(八卷) 속 어디에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또 그 뒤에 천태(天台), 전교(傳敎) 그 외 온갖 성자가 출현하여 법화경의 깊은 의의를 언급하였으나, 역시 「항상 南無妙法蓮華經를 불러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신 분은 없습니다.  그런데 대성인님께서는 출현하셔서 종지건립의 시초부터 「南無妙法蓮華經를 부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것을 항상 어지남(御指南)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당연히 신구의(身口意)의 삼업(三業)이라는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들 생활 모든 것이 신체와 입과 마음의 셋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 이외에 우리들 생활 내용은 없습니다.  항상 무슨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마음입니다.  무언가 행동을 하는 것은 신체입니다.  또 실제로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입입니다.  그래서 입으로 올바른 불법의 내용을 확실하게 나타내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대성인님께서도
「구업(口業) 공덕(功德)을 성취하느니라.」(어서 115)
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업(口業) 즉 입으로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 안에는 신심이 깊으신 분이 많아서, 조금전의 창제행(唱題行)에서도 「南無妙法蓮華經」라고 확실하게 부르셨다고 생각합니다.  또 매일의 근행(勤行) 등에 있어서도 똑바로 입을 벌려서 「니지부쓰고(爾時佛告). 쇼보사쓰규(諸菩薩及). 잇사이다이슈(一切大衆)...」경(經)을 읽고, 혹은 또「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계실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간요(肝要)합니다.  그러나 '신심(信心)을하고 있고 신심의 마음만은 있으니까 오늘은 근행을 하지 말자.'라던가, 혹은 근행을 해도 입이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들 신체 속에 부처의 생명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아, 진정한 공덕을 받게 되기가 어렵고 또 적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을 똑바로 크게 벌려서 경(經)을 읽고, 또 제목을 또박또박 부른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구업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에 의해 다시 신체에 대한 공덕, 또 마음에 대한 공덕이 분명해 진다는 의미가 당연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히 이 창제행은 우리들 자신의 신심 수행 상에서도 단련하는 데에도 대단히 중요한 것임과 동시에 자행화타(自行化他)에 걸친 길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그것을 실제로 행하여 가는 곳에 본인묘(本因妙)의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본인묘라고 하는 내용은 경(境)∙지(智)∙행(行)∙위(位)라는 넷으로써, 경지(境智)라는 것은 우리들의 범안범지(凡眼凡智)로써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깊은 불지(佛智)의 경계입니다.  즉
「경(境) 능히 지(智)를 발하고, 지(智) 다시 행(行)을 이끈다.」(육권초/六倦抄 42)
라는 것으로 이 경지명합(境智冥合)의 경계가 올바른 불법을 믿고 행(行)하는 곳에서 나타납니다.  이 행하는 곳에 저절로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는 말법의 범부가 이 몸으로 그대로 성불하는 바의 위(位)라는 것이 나타납니다.  우리들 범부가 미혹의 모습인 채로 곧바로 부처의 공덕을 성취한다는 것이 묘법(妙法)의 불사의(不思議)한 내용으로, 그것이 또 자신을 구제하고 남도 구제해 가는 근본의 길이기 때문에 창제수행이라는 것을 결코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온갖 종교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행(行)을 설하고 있으나, 가장 내용이 넓고 깊고 또 구체적으로 누구라도 실천할 수 있는 바의 가르침이야말로 대성인님의 삼대비법(三大
法)의 이른바 본문(本門)의 제목(題目)이기 때문에, 그것을 똑똑히 생각하셔서 더욱 신행배증하실 것을 기념하는 바입니다.

(11월 광포창제회의 때, 2004년 11월 7일 총본산 객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