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법주닛켄상인예하 어지남

강건한 신심

 

  대성인님께서는 經王殿答書(교오전답서)』에서
법화경(法華經)의 검(檢)은 신심(信心)이 강건(剛建)한 사람만이 사용하는 것이로다. 범에게 날개를 단 것과 같으니라. 니치렌(日蓮)의 혼(魂)을 먹물에 물들여 흘려 썼으니, 믿으실 지어다. 부처의 어의(御意)는 법화경(法華經)이니라. 니치렌(日蓮)의 혼(魂)은 바로 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어서 685)
라는 여러분들도 몇 번이나 들으셨으리라고 생각하는 유명한 어문(御文)을 어지남(御指南)하셨습니다.  이 어문(御文)에는 종탈(種脫)의 대비가 극히 간략한 말씀 속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른바 부처의 어의(御意)는 법화경(法華經)」이라는 것은 탈익(脫益)의 법화경 28품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것은 과거로부터 인연이 있는 재세(在世)의 중생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법화경의 근본인 南無妙法蓮華經의 본존님은 상행보살(上行普薩)이 출현한 뒤에 석존께서 친히 물려주시어 구원원초(久遠元初)의 불법으로서 말법에 출현하는 것이 모든 법문(法門)상에서 명백합니다.  이런 점에서 정법이 더욱더 훌륭하게 되는, 또한 그 근본으로서 종탈의 의의를 뚜렷하게 나타내신 어문(御文)인데, 그 앞의 법화경(法華經)의 검(檢)은 신심(信心)이 강건(剛建)한 사람만이 사용하는 것이로다 」라는 어문(御文)의 강건(剛健)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오늘 아침의 축인근행(丑寅勤行)은 처음부터 끝까지 실로 심한 비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상당수의 신도분들, 특히 법화강(法華講) 총강두(總講頭)야나기사와 키소지(柳澤喜惣次)씨를 비롯하여, 12월 등산회에 등산하신 800명 가량의 분들이 산내(山內)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은 또 지부 총등산을 위해 참예하셨던 분도 계셨다고 보는데, 현재 여기에 모이신 분들의 과반수 분들이 오늘 아침 축인근행에 참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저는 '너무 심하게 내려서 필시 대부분의 분이 참예하시지 않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객전(客殿)에 들어가 보니 참으로 많은 분들이 저 심한 비바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참예해 계셨습니다.  그리고 서로 이체동심(異體同心)한 가운데 근행·창제를 해 드렸는데, 저는 거기에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할 일은 확실하게 행하는 어떤 곤란이 있더라도 신심의 입장에서 그것을 모조리 배제하고 또 해야 할 일을 행하는 곳에 이 신심의 강건함」이라는 것을, 즉 대성인님께서 말씀하시는 의의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번뇌도 있고 과거로부터의 죄장(罪障)도 있기 때문에 어느새 신심을 게을리 한다든지, 혹은 신심을 하면서도 언제나 본존님의 대자비를 확실하게 받으며 자행화타(自行化他)에 전진하는 것에서 깜빡 벗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경우에도 이 신심의 강건함」 이라는 마음을 착실하게 갖고 가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강건함」이라는 것의 근본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라고 생각하면 역시 본존님에게 진정한 신(信)의 일념(一念)으로써 경지명합(境智冥合)의 제목(題目)을 부르는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느 때는 졸리는 듯한 마음으로 부르는 제목도 있고, 어떤 때는 여러 가지 잡념이 일어나서 본존님을 향하면서도 무언가 이질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상태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범부로서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마음을 진정으로 정하여 본존님을 향해서 눈으로 확실하게 본존님의 南無妙法蓮華經」를 배견하면서 제목을 부르면, 어느새 잡념이 없어지고 거기에 부처님의 대자비에 의한 커다란 경계(境界)가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 속에서 솟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체험하신 분도 대단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강건」한 신심의 기본이고, 또 그것이 정법을 올바르게 호지(護持)수행해 나가는 모습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제목을 부르는 것에도 강건한 신심의 기본은 본존님에 대한 정말로 순수한 일념에 있으며, 본존님을 향하여 착실하게 제목을 부르는 곳에 잡념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부처님의 깊은 묘법의 마음을 자기 자신의 생명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십계호구(十界互具)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작용이 차츰 훌륭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묘법의 신행의 공덕을 확신하고 스스로 행하는 동시에 또 다른 사람들에게 비록 한마디라도 절복(折伏)을 행하는, 즉 1년에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절복을 반드시 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신심 수행하는 것이 서로의 참된 성불득도(成佛得道)의 길이라고 믿는 바입니다.

(12월 광포창제회의 때, 2004년 12월 5일 총본산 객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