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법주닛켄상인예하 어지남

무명즉명(無明卽明)

 

  불법에서는 우리들의 생명은 과거로부터의 원인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간 일반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해서 온 것인가를 모릅니다. 불법에서는 기본적인 부분에서 줄곧 말하고 있는 것 중에서,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라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은 12라는 수에는 「12인연(因緣)」이라는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먼저 무명(無明)∙행(行)이 과거의 이인(二因)입니다. 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라는 상태가 현재의 오과(五果)입니다. 무명∙행이라는 과거의 원인에 의해서 현재의 식∙명색∙육입∙촉∙수라는 형태가 있는 것입니다. 즉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되고 태어나서 성장해 가는 과정의 형태입니다. 그리고 또 현재의 생활에 애(愛)∙취(取)∙유(有)라는 세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애∙취∙유의 삼인(三因)에 의해서 미래의 생(生)∙노사(老死)라는 이과(二果)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12인연입니다. 즉 과거의 원인에 의해 현재의 결과가 있으며, 현재의 원인에 의해 미래의 결과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인생관을 가진 사람은 무명의 근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명 자체를 모릅니다. 즉 미혹(迷惑)의 번뇌(煩惱)가 근원이 되어 오늘날 미혹의 모습과 불행한 모습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그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것이 원인이 되어 미래에도 다시 미혹에서 미혹으로 가는 곳에 불법을 모르는 세간 일반 사람들의 생명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근본의 무명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는가 하는 곳에 부처의 대자비(大慈悲)에 의한 가르침이 있는 것으로,석존께서도 일대불교(一代佛敎) 속에서 이 무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무명이라고 해도 이 내용을 나누면 견혹(見惑)∙사혹(思惑), 진사혹(塵沙惑), 무명혹(無明惑)이 됩니다. 그리고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는 견혹∙사혹의 내용만을 무명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大乘)의 가르침에서 들어가면 견혹∙사혹 외에 진사혹, 그리고 무명혹이라는 식으로 내용이 깊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중도(中道)의 내용, 즉 원(圓)의 내용을 모르는 곳에 근본의 무명이 존재하는 것으로 대성인님께서도 이에 대해 어서(御書) 안에서 여러 가지로 어지남(御指南)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무명을 어떻게 처리해 갈 것인가에 대해서 소승(小乘)의 생각에서는 우선 무명을 멸(滅)해간다, 즉 없애간다는 것을 설 합니다. 즉,
「무명(無明) 멸(滅)하면 곧 행(行) 멸(滅)한다. 행(行) 멸(滅)하면 곧 식(識) 멸(滅)한다. 식(識) 멸(滅)하면 곧 명색(名色) 멸(滅)한다. 명색(名色) 멸(滅)하면 곧 육입(六入) 멸(滅)한다. 육입(六入) 멸(滅)하면 곧 촉(觸) 멸(滅)한다. 촉(觸) 멸(滅)하면 곧 수(受) 멸(滅)한다. 수(受) 멸(滅)하면 곧 애(愛) 멸(滅)한다. 애(愛) 멸(滅)하면 곧 취(取) 멸(滅)한다. 취(取) 멸(滅)하면 곧 유(有) 멸(滅)한다. 유(有) 멸(滅)하면 곧 생(生) 멸(滅)한다. 생(生) 멸(滅)하면 곧 노사(老死) 우비(憂悲) 고뇌(苦惱) 멸(滅)한다.」(어서 101)
라는 식으로 차례차례 없애간다는 형태로, 그래서 결국 마지막으로는 공(空)으로 돌아간다는 곳에 진정한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그것이 아니라,생명 그 자체의 당체(當體)에 있어서 곧바로 무명즉명(無明卽明)이라고 여는 것이 법화경 내지 대승의 가르침입니다. 특히 법화경에서 무명즉명의 가르침  당체가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명이라는 내용이 그대로 즉(卽), 명(明)이라는 것이 불사의(不思議)한 것입니다. 그래서 妙法蓮華經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묘(妙)란 불사의 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불사의의 당체를 믿고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것이 무명즉명입니다. 법계삼천(法界三千) 모두가 우리들 생명의 당체입니다. 그러므로 그 미혹, 미혹이라고 해도 그 미혹에는 부처의 생명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즉 구계(九界)에 불계(佛界)가 갖추어지고, 불계에는 구계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분명히 교시하시는 동시에 그 수행의 길을 나타내신 것이 법화경이며 말법(末法)에서는 대성인님의 삼대비법(三大秘法)입니다. 그러므로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곳에 그 경계(境界)가 저절로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배찰 할 수 있습니다.
  (중략)
  12인연의 우리들 미혹의 생명이 본존님을 깊이 신봉하고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름으로써 무명즉명, 즉 무명이라는 근본의 번뇌가 그대로 명(明)으로써 우리들의 생명 속에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것이며, 여기에 하종불법(下種佛法)의 광대한 이익이 존재한다는 것을 한마디로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창제행의 때, 2005년 1월 12일 총본산 객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