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법주닛켄상인예하 어지남

 

  길을 만든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이것은 또한 불법상에서도 석존(釋尊)께서 출현하셔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 하시고, 이른바 일체중생(一切衆生)에 적합한 길을 현시(顯示)하신 것에도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길에 대해서 세 가지의 의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삼대비법(三大秘法)상에서 배견(排見)하는 것인데,첫째는 본문(本門)의 본존 당체(當體)의 내증(內證)에 있어서 전체의 길이 현시(顯示)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전문용어로써 대단히 난해한 의미도 있습니다만, 본존님 당체를 우리들 범안범지(凡眼凡智)로써 알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오로지 신(信)의 한 자로써 경배할 때, 법계(法界) 전체 속에 대성인님의 본불로서의 사(事)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의 경지(境地)가 역력히 존재하는 것을 배승(排承)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미 아시는 바와 같이 대성인님께서 분네이(文永) 8년(1271) 9월 12일에 다쓰노구치(龍之口)의 형장으로 끌려가시어, 당시 최고 권력자가 대성인님의 목을 자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목이 잘리려고 할 때에 그 불가사의한 빛 덩어리가 진사(辰巳)[남동]쪽에서 술해(戌亥)[북서]쪽으로 향하여 빛내며 건너가, 칼잡이 눈이 멀어 결국 대성인님의 목을 자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불가사의한 법계 전체 모습입니다.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의 오대(五大)가 본불님 거동에 의해서 묘법상에서의 작용을 확실하게 나타나게 되는, 그러한 점에 있어서 법계 전체 불사의(不思議)한 묘법 일념삼천의 길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세간 일반 사람은 물론 그렇지만 우리들 속에도 작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본존님을 향해서 착실하게 창제(唱題)해 드릴 때 우리들 마음이 그대로 법계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이며, 여기에 우리들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일 근본의 길이며, 이른바 「 허통(虛通)의 의(義)」라는 것입니다.
  허통(虛通)의 「허(虛) 」란 허공의 허입니다. 허공으로 통하고 있는 바의 길이 무한한 본존님의 당체, 이익, 공덕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을 믿는 것에 신심의 내용에 의한 불사의 한 공덕이 나타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에도 도사시(土佐市)◦다이신지(大信寺)의 여성 신도분의 체험발표가 있었는데,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체험을 여러분과 함께 저도 들었습니다. 그것도 이것도 모두다 그 근원은 법계 전체가 대성인님의 깊은 경계에 의해서 나타난 바의 허통에 해당하는 것이며, 일체의 법계 전체에 그 길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묘법을 부를 때에 무한한 이익과 공덕이 거기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우리들이 그것을 신(信)의 입장에서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두 번째는 허통에 대해서 「소천(所踐)의 의(義)」의  의(義)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길은 이른바 신(信)이라는 것으로써, 지혜로써 인식하면서 거기에 실천으로 행한다는 것이 두 번째의 길의 의의입니다. 즉 실천입니다. 여러분들도 때로는 「오늘은 피로하니까 근행은 하지 말자」라든가 「어제 근행을 안 했으니까, 덩달아 오늘도 하지 말자」라는 등 여러 가지 의미에서, 조석의 근행을 해태(懈怠)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는 일주일간, 십일,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일년이나 근행을 안 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때때로 듣습니다. 이것은 안 됩니다. 본존님을 안치하고 있을 테니까, 반드시 본존님 앞에 앉는다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소천(所踐)의 의(義)입니다. 즉 길의 의의는 올바른 본존님 앞에 자신의 신체를 바치고 거기에 앉아 반드시 근행, 창제를 실천해 나가는 곳에 소천의 의, 이른 바 길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으면 진정한 의미의 불법은 없으며, 묘법의 도리가 통하지 않아 그분의 생활은 날로 불행한 상태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소천의 의라는 곳에 길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능통(能通)의 의(義)」의 의(義)입니다.능통이란 능히 통한다는 것입니다. 즉 대어본존님께서 계시는 곳에 허통의 일체의 길이 존재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들이 신심의 일념으로써 본존님에 대해서 제목을 부르고 근행, 창제를 해나 갈 때에 자신의 그때그때의 경계에 있어서의 입장이 확실하게, 올바르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며 이것은 여러분도 아마 체험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3월 27일로 곧 4월이 됩니다. 바로 회계년도가 바뀌게 되어, 관공서의 공무원, 그 외의 회사원 분들의 이동 등도 행해집니다. 또 학생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교, 대학을 졸업하고, 혹은 또 그 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때마침 변화의 경계점이 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인생에는 그때 그때에 그 사람에게만 있는 식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 속에서 변화라는 것을 체험해 나가는 가운데에 여러 가지 불안이나 여러 가지 미혹된 마음이 생겨서 그것이 시작이 되어 점점 불행하게 되어 가는 모습이 존재합니다. 그때 그때가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그때 그때의 한 순간 한 순간의 의의와 대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때에 있어서 특히 4월은 중요한 때이기도 한데, 이런 때에 이렇게 훌륭하게 총회가 거행되고 신심수행에 용맹 매진의 마음으로써 총본산에 모이신 여러분들의 그 마음은 본불님께서도 조람(照覽)하시는 것이며, 참으로 존귀하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 한 발이라도 신심에 잘못이 생기면 거기서부터 미혹이 생겨서 퇴전이 일어납니다. 저는 근행, 창제를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반드시 행해 나가는 것이 신심의 처음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법화강연합회 제 42회 총회의 때,2005년 3월 27일 총본산 광포방(廣布坊)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