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법주닛켄상인예하 어지남

즉신성불(卽身成佛)의 창제(唱題)

 

  8월은 제일 더운 시기로 심신(心身)이 여러 가지로 변화하고 건강에도 영향이 있습니다만 이 객전에서 참으로 더위를 잊을 듯한 경계(境界)로써 여러분과 함께 창제행을 집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달력을 보면 오늘이 '입추(立秋)'로 되어 있습니다. 덥기는 하지만 앞으로 가을 기운이 나오게 된다는 것으로 1년을 통하여 춘하추동의 변화가 거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생명에도 생주이멸(生住異滅)이라는 변화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성인(聖人)이라도 벗어날 수 없는 법계(法界)의 모습이며, 우리들에게도 생주이멸, 그리고 마지막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형태로써 변화하며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겨울 다음에는 봄이 오듯이 사계는 순환하여 끝이 없으며, 우리들의 생명도 이 우주법계(宇宙法界)와 함께 존재하고 거기에 변화하면서 상주(常住)한다는 것이 본문(本門) 수량품(壽量品)의 가르침에서 배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변화가 있고 그 변화에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 속에서도 온갖 변화가 있습니다.그 속에서 멍하게 있으면 그 변화의 도리를 모르고 결국은 거기에서 여러 가지 잘못된 형태나 모습, 불행이 나타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에 의해 또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과 같은 커다란 변화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라는 곳에 그대로 붙어서 진실의 상주(常住)의 모습도 또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일여(一如)의 형태에서 그 의의를 분명하게 현현하신 것이 妙法蓮華經이기 때문에 妙法蓮華經를 신심해 나가는 곳에 우리들의 생명 속에 저절로 그 도리가 지켜지게 되는 모습도 존재합니다. 그 변화 속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으므로 그 변화에도 근원이 있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에도 봄에는 싹이 나고, 여름은 지엽(枝葉)이 우거지며, 그리고 가을이 되어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잎이 떨어집니다. 상록수는 잎은 떨어지지 않습니다만, 그 나름대로 사계의 변화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또 봄이 되어 새로 싹이 나오게 된다는 형태가 있지만 그 근원은 뿌리에 존재합니다.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 뿌리의 힘으로 줄기에서 가지가 자라고 잎이 무성해지며 또 열매도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를 잃어서는 한 그루의 나무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이와 같이 변화 속의 상주라는 곳에 모든 기본이 존재합니다. 불법에서도 갖가지 중생의 기근(機根)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르침이 설 해져 있습니다만, 이것은 변화에 대응한 모습이며 그 근본의 부분은 본유상주(本有常住), 항상 변하지 않는 바의 생명에 있어서 참된 묘법(妙法)의 모습이 있으며, 또한 우리들 생명의 본질이 거기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대불교(一代佛敎)안에서는 방편(方便)의 가르침에 사로잡혀서 근본의 법화경을 잊어버리고 있는 모습도 있습니다. 이것이 각종(各宗)의 잘못된 방법(謗法)의 모습입니다. 다시 또 하종불법(下種佛法) 입장에서 말한다면 근본의 본문하종(本門下種)의 삼보(三寶)를 잊고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 이것이 올바른 가르침이다 라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 현대에 있어서의 일흉(一凶)이 창가학회입니다. 이것도 하종삼보(下種三寶)에 일체 불법의 근본이 있다는 것을 잊고 그 잘못된 것에 사로잡혀 자신들이 아주 조금 광선유포(廣宣流布)를 했으니까 라는 것으로 자신들에게 불법의 본체(本體)가 있다는 등의 큰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며 바로 타지옥(墮地獄)의 도리(道理)·문증(文證)·현증(現證)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하종 삼보의 올바른 불법을 올바르게 받들며 수행해 나가는 곳에 참된 공덕을 성취하게 되는 이유가 존재한다고 확신합니다.
  창제행은 그대로 우리들의 범심(凡心)이, 즉 미혹(迷惑)의 마음, 미혹의 생명이 그대로, 즉 불심(佛心)으로써 현현하는 곳에 있다고 하는 대성인님 내지 역대상인님의 어지남이 있습니다. 부처님에 대한 내용은 다른 불법 각종(各宗)에 있어서는 완전히 불명확합니다. 멀리 서방극락(西方極樂) 십만억토(十萬億土)에 가지 않으면 안락해질 수 없다 라든가 그 외의 신흥종교에서도 여러 가지를 말합니다만 결국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되면 대단히 불명확합니다. 뭔지 알 수 없지만 먼 곳에 혹은 깊은 곳에 좋은 것이 있다는 식의 가르침을 각각 설하고 있습니다만, 결국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대성인님께서는 범심즉불심(凡心卽佛心), 불심즉범심(佛心卽範心)의 도리가 묘법이라고 분명하게 어지남하시고, 또 그것을 실제로 본문(本門) 삼대비법(三大秘法)의 대어본존(大御本尊)으로서 건립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본존님을 신봉하고 제목을 착실하게 불러가는 곳에 본존님의 마음이 그대로 우리들의 마음이 되고, 또 南無妙法蓮華經라고 입과 신체로 행하는 곳에 우리들 범부(凡夫)의 몸이 그대로 부처의 몸이 된다, 본존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곳에 본인본과(本因本果), 즉 인과일여(因果一如)의 공덕이 존재한다는 것을 교시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일체 불법의 근본이며 또 전체를 포함하고 구족(具足)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갖 경전(經典) 등에 있는 모든 불보살(佛菩薩)의 공덕도 「南無妙法蓮華經 日蓮 [재어판(在御判)]」의 아홉 자 속에 일체가 담겨 있기 때문에 이 본존님을 신봉하고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하는 곳에 모든 가르침의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제목을 부르고, 우리들의 심신(心身)이 그대로 불심즉범심(佛心卽範心)의 본인묘(本因妙), 범신즉불신(凡身卽佛身)의 본과묘(本果妙)라는 공덕을 성취하게 되는 곳에 삼세(三世)에 걸친 무한한 성불(成佛)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그 깊은 의의를 더욱 음미하면서 창제행에 힘쓰실 것을 기념하면서 오늘의 인사로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8월 광포창제회의 때, 2005년 8월 7일 총본산 객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