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지용의 사명에 살자

한국 담당교사
스와료도 어존사
諏訪凉道 御尊師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 『諸法實相抄(제법실상초)』에서
「니치렌(日蓮)과 동의(同意)라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 됨이리라. …… 말법(末法)에 와서 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는 자(者)는 남녀(男女)를 가리지 말지니, 모두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출현(出現)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題目)이니라」(어서 666)
라고 말씀하셨다. 과거 이래 본불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과의 인연을 배찰할 때, 하잘 것 없는 범부인 우리들도 또한 깊고 존귀한 인연으로 이 세상에 생을 받은 것이다. 바로 지금 지용의 권속(眷屬)이라는 자각으로 사명으로 살아가지 않겠는가. 최고이자 최선의 인생이란 이 자각 여하에 달려있다.
  법화경에서는 지용보살(地涌菩薩)의 덕을 밝히고 있다. 별(別)해서는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 단 한 분께 갖추어지는 덕이지만, 「니치렌(日蓮)과 동의(同意)라면」이라는 신심에 살 때, 우리들도 역시 지용의 권속으로서 존귀한 덕의 일분을 갖추게 된다. 그 덕이란 법화경의 문의(文意)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용보살은 말법탁악의 세상에 있으면서도 탁악의 더러움과 악에 물드는 일이 없다.」
「지용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의지가 굳건하고, 아무리 어려운 문답이라도 이를 논파하며 두려워하는 일이 없다.」
「지용보살은 대난을 당해도 참고 견디는 마음이 강하고, 그 행동이 훌륭하며 게다가 위엄이 있어 타인을 심복(心腹)시킨다.」
  이런 경문(經文)의 일부를 펼쳐보더라도 지용보살의 위덕이란 이렇게 고귀한 것이다.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 아래에서 신심수행하는 자 본불님과 숙연이 깊다고 생각하여 더 한층 정진을 맹세해 주었으면 한다.
  『生死一大事血脈抄(생사일대사혈맥초)』에
「과거(過去)의 숙연(宿緣) 쫓아 와서 이번에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가 되시었으니라. …… 『재재제불토(在在諸佛土) 상여사구생(常與師具生)』 결코 허사(虛事)가 아니리라」(어서 514)
  또 어법주 니치뇨상인 예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절복은 일체중생 구제의 자비행이며, 스스로가 과거원원겁(過去遠遠劫)부터 지어온 죄장을 소멸하고 행복해지기 위한 최고의 불도수행이며, 그리고 불조삼보존(佛祖三寶尊)에 대한 최고의 보은행이며, 또한 부처님께서 내려주신 존귀한 사명입니다.」(2006년 3월 5일)
  절복이야말로 우리들이 바라는 유일한 대도(大道)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