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법주 니치뇨상인예하 어지남

절복(折伏)의 중요성

 

  올해「결기(決起)의 해」는「2009년『立正安國論(입정안국론)』정의현양(正義顯揚) 750년」의 대가절(大佳節)까지 드디어 남은 날이 앞으로 3년으로 닥쳐온 참으로 중요한 해입니다. 다시 말해 올해「결기의 해」는 모든 법화강원이 마음을 새롭게 해서 2009년의「지용배증(地湧倍增)」과「대결집(大結集)」의 어명제(御命題) 달성을 목표로 떨쳐 일어나, 결의를 굳히고 단호하게 행동을 시작해야 하는 해입니다. 어떠한 행동을 시작해야 하는가 하면 그것은 말할 것까지도 없이「지용배증」과 「대결집」의 절대적 요건인 절복(折伏)을 행하는 것입니다.
  대성인께서는『御義口傳(어의구전)』에
「대원(大願)이란 법화홍통(法華弘通)이니라」(어서 1749)
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광포(廣布)의 대원(大願)도, 그리고 어명제(御命題)의 달성도, 우리들의 신경법중(身輕法重)ㆍ사신홍법(死身弘法)의 한결같은 절복홍통(折伏弘通)에 의해 비로소 달성되는 것입니다. 절복없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실현은 없고, 어명제(御命題)인「지용(地涌)의 벗의 배증(倍增) 내지, 그 이상의 배출(輩出)과 대결집(大結集)」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복이야말로 어명제(御命題) 달성의 절대적 요건이라는 것을 올해「결기의 해」를 맞아 본종 승속(僧俗) 한 사람 한 사람이 똑똑히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법화경의 신해품(信解品)을 배독하면
「열반(涅槃) 하루의 가치를 얻어, 이것으로써 크게 얻었다고 하여, 이 대승(大乘)에 있어서, 뜻하여 구하는 일이 있은 적이 없었나이다.[득열반일일지가(得涅槃一日之價) 이위대득(以爲大得) 어차대승(於此大乘) 무유지구(無有志求)]」(법화경 197)
라는 어문(御文)이 있습니다. 「열반(涅槃) 하루의 가치」란, 이것은 소승(小乘)의 성문(聲聞)의 깨달음을 말합니다. 즉 눈앞의 당장의 깨달음이고, 비유하면 매일 전망도 없이 그 날 하루의 임금(賃金)만 바라보고 일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소승의 깨달음에 만족해버려 대승(大乘)의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 어리석은 생각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소승의 깨달음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지 않고, 그저 자신만의 덧없는 찰나적인 작은 행복을 계속 좇아가는 자기 중심의 깨달음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대성인님께서는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절복을 하지 않는 신심은 자신의 행복밖에 생각하지 않는, 소승의 깨달음과 똑같다는 말입니다.
  절복은 일체중생 구제의 자비행이며, 사의(邪義)ㆍ사종(邪宗)의 해독(害毒)으로 좀먹은 삼독강성(三毒强盛)한 중생의 심전(心田)에 본인하종(本因下種)의 묘법(妙法) 오자(五字)를 하종하고, 이로써 그 사람을 즉신성불(卽身成佛)의 경계로 인도하는, 최고 지선(至善)의 불도수행이며, 대승(大乘)중의 대승인 지용보살(地涌菩薩)에게 주어진 고귀한 사명입니다. 따라서 대성인께서는 여러 어서(御書)에서 법화경의 적을 보고서 그냥 두고 꾸짖지도 않으며 절복을 하지 않는 자, 이는 열반경에서 말하는「자비(慈悲)없이 거짓으로 친한」자이며「불법중원(佛法中怨)」의 사람이라고 단언하시고 있습니다. 또한『曾谷殿答書(소야전답서)』에는
「법화경(法華經)의 적(敵)을 보면서 놓아두고 책(責)하지 않으면, 사단(師檀) 함께 무간지옥(無間地獄)은 의심(疑心) 없으니라」(어서 1040)
고 말씀하셨습니다. 『妙法比丘尼答書(묘호비구니답서)』에는
「어떠한 지인(智人) 선인(善人)일지라도 반드시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떨어지리라」(어서 1262) 
고 말씀하셨고, 또한 『如說修行抄(여설수행초)』에는, 이 절복을 하지 않는 자를 가리켜
「법화경(法華經) 수행(修行)의 때를 놓치는 요물(妖物)이 아니겠느뇨」(어서 673)
라고까지 말씀하셨으며, 『阿佛房尼御前答書(아부쓰보부인답서)』에는
「안이(眼耳)의 이덕(二德) 곧바로 깨어져 대무자비(大無慈悲)이니라」 (어서 906)
고 말씀하시어, 비록 신심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방법(謗法)을 꾸짖지 않고 절복을 행하지 않는 사람을 엄중하게 단파(斷破)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까지 대성인님께서 절복을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엄중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절복을 행하는 사람의 공덕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시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즉 대성인님께서는『四信五品抄(사신오품초)』에서
「벌(罰)로써 덕(德)을 사유(思惟)하건대 나의 문인(門人)들은 복과십호(福過十號) 의심(疑心) 없는 것이니라」(어서 1115) 
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벌(罰)로써 덕(德)을 사유(思惟)하건대」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자기 혼자만의 이기적 신심에 집착을 해서 절복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어떠한 지인(智人) 선인(善人)일지라도 반드시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떨어지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참으로 엄한 벌을 받게 됩니다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그대로 절복을 행하는 사람의 공덕의 크기를 나타내며, 그 공덕이 바로「복과십호(福過十號) 의심(疑心) 없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복과십호(福過十號)」란 묘락대사(妙樂大師)의『법화문구기(法華文句記)』에
「공양(供養)하는 일이 있는 자(者)는 복(福)이 십호(十號)보다 뛰어나다」[『후지학림판문구회본(士學林版文句會本)』 上659] 
라는 문장을 가리키고 있는데, 약왕품(藥王品)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가득 채운 칠보(七寶)를 부처에게 공양하는 것보다도, 법화경의 일사구게(一四句揭)를 수지하는 공덕이 훨씬 크다고 나와 있으며, 법화경을 공양하는 공덕은 십호(十號)를 갖춘 부처를 공양하는 복(福)보다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조금 전의『四信五品抄(사신오품초)』의 어문(御文)은 절복을 행하는 사람의 공덕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시고 있는 것이라고 배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절복의 공덕이 얼마나 큰가를 아무리 머리로 이해해도 보람 없는 일이며, 더욱 한 걸음 나아가 논리가 아니라, 사(事)를 사(事)로 행하는 우리 자신의 절복의 실천에서 그 공덕을 체험하는 것이 간요합니다. 
  만약 지금까지의 싸움에서 절복이 생각한 대로 진행되지 않고 정체되어 있다고 하면, 조금 전의 금언(金言)을 깊게 배독하고 강중(講中)이 온 힘을 다해 절복에 대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면, 그것은「움직이는」것입니다. 먼저「행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대성인님께서는『一念三千法門(일념삼천법문)』에서,
「백천(百千) 조합한 약(藥)도 입으로 마시지 않으면 병(病)도 낫지 않느니라. 곳간에 보배를 가졌어도 열 줄을 몰라 굶주리고, 품에 약(藥)을 지녔어도 먹을 줄을 몰라 죽는 것과 같으니라」(어서 110)
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실하게 제목을 올리고 기원하고 움직이며, 강중이 일치단결(一致團結)ㆍ이체동심(異體同心)해서 절복으로 일어서면 제천(諸天)도 반드시 움직여 절복은 달성된다고 굳게 믿습니다. 특히 오늘날 국내외의 혼돈된 상황을 볼 때 우리들은『立正安國論(입정안국론)』의 원리에 비추어, 어떻게 해서든 절복을 해서 어명제(御命題)인「지용배증(地涌倍增)」과「대결집(大結集)」을 완수해야만 합니다. 「지용배증」도 「대결집」도 절복을 동반해야 비로소 명실공히 어명제(御命題)를 달성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절복 없이「지용배증」은  달성되지 않습니다. 또한 절복이 동반되지 않는「대결집」은 단순한 숫자 채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불조삼보존(佛祖三寶尊)께 대한 참된 보은 사업으로 되지 않습니다. 또 어명제(御命題)를 내려 주신 닛켄상인(日顯上人)의 마음에도 보답해 드리지 못합니다.
  올해「결기의 해」를 맞아, 지금 우리가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모든 강중이 마음을 하나로 해서,어명제(御命題) 달성을 목표로 하여 절복에 일어서는 것입니다. 어명제(御命題)까지 앞으로 3년간의 싸움이야말로 가장 간요합니다. 그 중에서도 올해「결기의 해」야말로 앞으로의 싸움의 승패를 결정 짓는 중요한 해가 됩니다. 부디 여러분께서는 대어본존님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 아래, 더욱 더 이체동심ㆍ일치단결해서,어명제(御命題) 달성을 향해 용맹정진 해주시길 진심으로 염원하며 저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법화강연합회 제43회 총회 때 / 2006년3월26일 총본산 광포방에서)